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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음이 찡하고도 벅찬 하루입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도 가슴이 뜨겁게 뛰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한 장군과 한 여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다시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 전쟁 한복판에서 피어난 진심
1952년 11월 27일, 부산역 건너편 산자락의 판자촌에 큰불이 났습니다. 피난민들은 삶의 마지막 끈처럼 매달린 그곳마저 잃었습니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잠잘 곳도 없는 참혹한 현실. 그때 미군 군수사령관으로 한국에 주둔하던 리차드 위트컴 장군은 군법을 어기고 군수 창고를 열어 3만 명에게 담요와 식량을 나눠줍니다.
그는 이 일로 미 의회 청문회에 섰고, 의원들의 질책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에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둔지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 승리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장군의 진심이 통했던 걸까요.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고, 그의 선택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됩니다.
🎓 장군이 남긴 유산, 부산대와 메리놀병원
전쟁이 끝난 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땅에 남아 군수기지를 정부에 돌려주며 “이곳에 대학을 세워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부산대학교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학 구성원 중에도 이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는 이어 메리놀 병원을 세우고,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직접 거리로 나서 모금을 벌였습니다. 당시에는 도포를 입은 채 모금하는 그를 의아하게 보기도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 전쟁고아의 아버지, 한묘숙 여사의 동반자
위트컴 장군은 전쟁고아들을 위해 헌신하던 한묘숙 여사와 결혼합니다. 그리고 유언으로 “장진호 전투에서 데려오지 못한 미군 유해를 마지막 한 구까지 찾아달라”고 남깁니다.
한 여사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북한에서 나온 유골들을 구입하며, 그 가운데는 한국군 유해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간첩 누명을 쓰고도 굴하지 않았던 그녀는 남편 못지않게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두 분은 끝내 집 한 채 없이 이 땅에서 생을 마쳤고, 현재 부산 유엔공원묘역에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 1만원의 기적, 그들의 정신을 기리다
그토록 위대한 두 분을 기리는 동상 하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이제 40년 만에 시민들의 손으로 조형물을 세우자는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70여 년 전 혜택을 받았던 3만 명이 1인당 1만원씩 모금하자는 약속. 그 시작이 오늘 이루어졌습니다.
국가 예산도 아니고, 재벌의 기부도 아닌, 시민의 힘으로 만드는 기념비. 이보다 더 아름다운 보은이 있을까요?
위트컴 장군의 조형물 건립 비용은 시민 성금으로 추진된다. 기부 금액은 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려 `1인 1만원'이 원칙이다. 하지만 한 사람이 1만원씩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가족이나 지인 등의 이름을 기재해 1만원씩 계좌 이체를 하면 된다. 조형물 건립 성금 계좌 부산은행 101-2073-6988-01 (사)국제평화기념사업회
🎖️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도 위트컴 장군에게 무궁화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감사한 일입니다.
오늘이 왜 이렇게 기쁜 날일까요? 그건 아마도, 위트컴 장군과 한묘숙 여사처럼 누군가를 위해 선뜻 손 내미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사실 덕분일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여러분, 한 잔의 커피 값을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따뜻한 손길 하나가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이, 지금의 한국병(病)을 고치는 백신이 될지도 모릅니다.
위트컴 장군과 한묘숙 여사,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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